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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광야)은 주님을 만나는 최적의 장소이다! 홈지기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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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광야)은 주님을 만나는 최적의 장소이다!


사노라면 삶의 모든 가능성이 비껴만 가고 하루하루의 삶의 질곡으로 허리가 꺾일 때를 만나게 됩니다. 모든 희망의 파랑새는 물 건너가고, 나와 마주치는 불청객은 지독하리만큼 힘겨운 시련뿐입니다. 더 나아질 것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련의 끝을 대충이라도 알 수만 있어도 이렇게 힘 들지는 않을 겁니다. 이 고통 속에는 또 다른 유익들이 있다고 하시면 백년도 괜찮겠습니다. 그렇게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화려한 것을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작고 소박한 것을 바라는 것뿐인데, 그것마저도 내게는 특별한 손님입니다. 아름다운 꿈과 계획은 사라진지 오래고 함께할 지인들도 이미 곁에 없습니다. 나는 제 자리인데 다른 이들은 벌써 저만치 달리고 있음에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제는 잃을 것도, 내어 놓을 것도, 버릴 것도, 숨길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빗소리에도 놀라고 바람소리마저도 서럽습니다. 저 하늘에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주님이 오시나해서 설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오셔야 해결되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으로는 안 됩니다. 돈으로도 어렵습니다. 방백을 의지함도 부질없고 명예를 붙잡아도 소용없습니다. 남에게는 쉬운 일도 나에게 오면 어려워지고, 남에게는 편안함도 나에게는 가시방석이 됩니다. 간신히 기도의 끈과 말씀을 붙잡고 있습니다. 마치 요셉이 우물에 빠질 때의 심정입니다. 애굽에 팔릴 때의 억울함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사자를 피하여 도망가다 곰을 만났고, 곰을 피해서 집으로 돌아와 쉬려하는 순간에 뱀에게 물립니다. 이러한 삶을 우리는 '광야학교'라 부릅니다. 광야는 처절합니다. 고독합니다. 막막하고 외롭습니다. 의지할 곳도 숨을 곳도, 공격할 무기도,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변변치 못합니다. 작렬하는 태양과 살을 에이는 추위뿐입니다. 게다가 홀연히 나타나는 아말렉 군대는 생명을 위협합니다. 광야학교의 교관은 '성령님'이십니다. 교과 과목은 '기다리는 훈련'입니다. '포기하는 훈련'입니다. '깨어지라는 훈련'입니다. '내려놓는 훈련'입니다. '하나님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100%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철저히 비우는 훈련'입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성령님이 가라하시면 가야하고, 서라 하시면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학교에서 참 성숙과 참 신앙을 소유하게 됩니다. 훈련이 힘들고 무서울수록 우린 몰라볼 정도로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광야학교에다 몰아넣으시고 진흙탕에 뒹굴게 하십니다. 그곳은 이론을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실전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광야학교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닙니다. 믿는 것이 힘입니다. 기도하면 응답해준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해서 응답을 얻어내야 합니다. 반석을 치면 물이 나온다가 아니라, 반석을 쳐서 물을 먹어야만 합니다. 정금은 연구실에 앉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용광로에서 만들어 지듯이 주님의 강한용사는 교실에서, 예배당에서 세미나실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사람은 광야학교에서 배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광야학교에 입학했다고 무조건 졸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 받았다고 성화되거나 축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고난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며, 광야학교에 들어갔다고 우등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강력한 터치와 깊은 은혜뿐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자체가 축복이 아닙니다. 고난이 특권은 아닙니다. 고난 중에서도 은혜를 체험할 때 고난이 영광 되는 것이며 유익함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는 고난은 맷집만 더할 뿐입니다. 성령의 인도가 없는 광야는 사망의 골짜기일 뿐입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았습니다. 돌에 맞은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돌에 맞으면서도 하늘이 열려 주님을 보았다는 것이 축복이며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이 열려있는 고난, 하늘이 열려있는 실패, 하늘이 열려있는 가난, 하늘이 열려있는 아픔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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