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진실한 영적예배를 원하신다!
- 홈지기 2026.2.22 조회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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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진실한 영적예배를 원하신다!
태양이 비취는 청명한 날에도 그늘은 있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장미에도 찌르는 가시가 함께 있음을 본다. 그렇듯이 밝고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 뒤엔 울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어쩜 많이 밝아 보일수록 많이 울고 있는 것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뒤엔 눈물 흘리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음을 느끼며 놀랄 때가 많다. 가룟유다는 사랑하는 선생님을 입맞춤으로 배신하였다. 이것은 타락한 본성을 소유한 인간들만이 할 수 있는 위장의 능력이다. 강아지는 슬프면 울어대고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어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슬퍼도 기쁜 듯이 위장하고 기뻐도 슬픈 척을 할 수 있다. 영적인 삶도 다르지 않다. 분명히 충만하지 않은데도 세련되고 화려한 포장으로 충만하지 않음을 대신하려 한다. 분명 영적이지 않는데 영적용어를 사용하며 영적인 갈망을 표출하여 영적인 사람인 듯 코팅하려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받으신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상당수의 크리스천들이 영이 아닌 혼적인 잠재력으로 영을 대신한다. 예를 들어 봉사나 헌신이나 섬김은 성령 충만할 때 저절로 이루어지는 열매이며 결과이다. 봉사나 구제를 많이 했다고 해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배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비우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참 헌신에 성공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고 또한 예배를 통해 축복과 위로와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예배는 얼마나 의식에 익숙하며 타성에 젖어 있는가? 정확히 표현하자면 예배를 드렸음으로 영(靈)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란 말이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혼적 열심만으로도 얼마든지 봉사가 가능하고 헌신이나 섬김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봉사자체를 영적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느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물으신다. 하나님의 임재 없이도 수십 년간 교회생활이 가능하고 목회도 선교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은 하나님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런 섬김은 가인의 예배와 같은 것이다. 그러면 혼적 예배와 영적예배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간단하다. 성령의 감동으로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한 것이면 영적이고, 억지로 하거나 자기만족을 위하여 하면 혼적 예배이다. 이제 우리는 나의 예배와 봉사와 섬김이 혼에서 출발한 것인지 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예배와 삶 뒤에 혼의 잠재력이 숨어 역사하듯이, 웃고 있는 상당수의 얼굴 뒤에는 울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진짜 나는 속사람이다. 속사람은 병들고, 슬프고, 우울하고, 어둡고, 상처받고 쓴 뿌리로 가득한데 그것을 감추기 위해 우린 부단히 노력한다. 마치 얼굴의 흉터를 화장으로 가리듯이 말이다. 우리는 부드러운 미소로 형제를 미워하고, 밝은 얼굴로 형제들을 정죄하고 포옹함으로 형제에게 칼을 들이댄다. 그리고 군중 속에서 빠져나와서 자기 홀로 있을 때에는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두 집 살림을 사느라 지쳐 있는지 모른다. 군중 속에서는 명랑하고, 사랑 많고, 다정한 사람으로 철저히 자신도 모를 만큼 위장하고 포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내면 깊은 곳에는 바다만한 분노와 상처와 원망이 시한폭탄처럼 출렁이고 있다. 그래서 교회서는 성자로, 세상에서는 탕자로 살아가는 독특한 삶의 방식의 노하우를 터득하여 삶을 영위한다. 마치 능력도 안 되는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폼만(?) 잡느라고 실제로는 하루 세끼 걱정에 궁핍한 졸부처럼 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속이 텅 빌수록 시끄럽다는 말이다. 사람도 그렇다. 속이 꽉 찬 사람은 별말이 없다. 요동도 없다. 불행하고 힘이 든다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속이 텅 빈 사람은 텅 빈 속을 가리려고 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우선 지나치게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고, 분수에 넘치는 명품으로 텅 빈 속을 포장한다. 마치 힘이 없고 약한 물고기일수록 화려하게 보호색을 띠듯 이런 사람의 하루는 천년같이 고단하다. 잔머리를 쓰며 처세술에 분주하다 보니 예수도 그런 식으로 믿으려 한다. 하나님은 심령이 순전한 자들을 사랑하시고 복 주신다. 하나님은 간사함을 아주 싫어하신다. 이제는 울고 있는 진짜 나를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무엇을 가리며 숨기려 하는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 정말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 달라고 애원하라. 죽고 싶으면 죽고 싶다고 호소하라. 기도가 안 되면 안 된다고 시인하라. 믿음이 없으면 안 믿어진다고 고백하라. 화장을 지운 여인의 모습처럼 하나님 앞에서 포장을 걷어내라. 철저히 오랜 세월동안 타성으로 코팅된 껍질을 벗겨내고 순수하고 신선한 새 사람을 입으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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