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뛰어넘어 생명 그 자체이다.
생명은 그 존재만으로도
경이롭고 아름답고 끈질기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임으로
우리의 죽었던 생명은 새롭게 태어난다.
이것을 중생 또는 거듭남이라 한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목숨(=육체의)은 있을지언정
생명(=영혼의)이 없다.
요일5:12절에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고 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지성과 교양과 재물로
치장을 하고 위장을 하여도
그들은 영적으로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가까이 가 보라.
사망냄새만 풍길 뿐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전혀 보잘 것도 없고
초라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영혼)은
생명의 냄새 즉 '그리스도의 향기' 를
발하게 마련이다.
솔솔 풍길 수도 있고, 풀풀 날릴 수도 있고
펑펑 뿜을 수 있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생명의 속성은
외부환경의 지배를 별로 받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 환경을 지배하기도하고
환경의 지배를 받기도 하지만..
생명 그 자체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감성이나 감각에 영향을 주고받을 뿐이다.
왜냐하면 생명은 변하지도 않지만
변화에 동화되지도 않는다.
생명이 없는 시신(屍身)의 온도는
환경의 영향을 즉시로 받는다.
방안의 온도가 10℃면
시신의 온도도 10℃가 된다.
방안의 온도가 30℃면
시신의 온도도 30℃가 된다.
그래서 시신(屍身)은
환경과 공기에 의해 썩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온도는 항상 동일하다.
언제어디서나 36.5℃이다.
북극에 가도, 열대지방을 가도,
인체의 온도는 동일하다.
물론 외부적으로 또는 순간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우리를 앞서간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극한의 핍박과 고난 앞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들은 신앙의 정절과
믿음의 절개를 지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은 하나같이 '예수생명'을 소유한
참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종교나 교리나 교단이나
직분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생명을 소유했기에 언제 어디서나
또는 어떤 상황에서나
36.5℃ 유지하게 된 것이다.
춥다고 우리의 몸의 온도가
영하 10℃로 내려가고
덥다고 우리 몸의 온도가
영상 50℃로 상승하던가?
아니다.
질병에 걸리거나
생명에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약간의 기복은 있을 수 있겠지만
건강한 생명을 가진 자는 언제나 일정하다.
예수그리스도의 속성 중에 하나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덥거나, 춥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부요하거나, 가난하거나..
무명이거나 유명하거나..
초막에서나, 궁궐에서나..
신앙온도는 늘 36.5℃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것은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주님께 온전히 연합했을 때만 가능하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쌓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아멘! 마 라 나 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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